서로에게 길들여지지 않는 시대와 부부재산분할 – 쌩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생각나기도...
옛날 아니 불과 30-40년 전만 해도 시집간 딸이 시집살이 서럽다고 혹은 남편으로부터의 여러 가지 부당한 대우를 받고 더 이상 살기 힘들다고 친정을 찾아오면,
친정집에서는 매몰차게 혼내서 돌려보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습니다.
그 시절 시댁에서 쫓겨 오는 것을 ‘소박맞았다’고 하고,
그런 대우를 받고 온 것 자체가 가문의 불명예라고 생각하였으며
그 처자는 다시 다른 곳으로 시집가서 소위 ‘팔자를 고치는 것’도 쉽지 않다고 생각했지요.
그러나 이제 이혼이 전혀 흠이 아니고
자유의지가 있고 내 인생이 중요한 것인데
한번 살다가 뜻이 맞지 않으면 서로 갈라서는 것이 더 현명하다고
받아들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.
문득 쎙떽쥐페리의 ‘어린 왕자’가 떠오릅니다.
왕자와 꽃의 사랑에 빗댄
서로 길들이기의 과정이지요.
마눌과 처음 미팅서 만나 연애하기 시작할 때 마눌이 문고판으로 사준 책입니다.
첨에는 무슨 유치한 동화를 ...했는데
세월이 흐를수록 인간이 서로 싱크로나이징 한다는 것은
길들여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.
정말 은유가 깊은 책이라는 생각이 갈수록 듭니다.
위 책속의 길들여지고 길들이기는 제 살아오면서
늘 머릿속을 지배하는 관념이 되었습니다. 또 옆길로 샜군요 ㅠㅠ.
어찌됐든, 늘어났다고 얘기하지만
그래도 의미있게 살아가는 인생이 채 100이 안 되는데
뭘 얼마나 기다리고 양보하며 서로에게 길들여져야 하느냐?
한다면 답은 없습니다.
세상은 어제 오늘이 다르고
시간의 흐름이 전광석화와도 같은데
무슨 영화를 누린다고 변할 것 같지 않은 상대에게 기대를 하느냐?
사람도 사람 나름이다 하면 더욱 할 말 없습니다.
이제 쉽게 갈라서고 쉽게 맺어지는 것이 전혀 문제될 것이 없고
흠되지도 않으며 도리어 각자의 행복추구를 위한 것이라면
우리 사회가 기존부터 고정의 관념처럼 사수하여 왔던
확고부동한 성(FORTRESS) – 가정도 이제 개념이 변화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.
서로 길들여지지도 않으면서
무장평화와 같은 긴장 속에
소 닭 보듯이 살아가는 부부가 늘고 있는 것도
현실입니다.
갈라서는 것이
경제적으로 RISK를 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섣불리 나서지도 못하며
상대의 실수나 불륜 부정을 기다리는 것이지요.
그런 배경 중 하나가 현재의 부부간의 재산분할제도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.
부부가 처음에는 좋아서 만났지만
아무리 좋은 풍경도 단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식상한데
제 아무리 절세의 미인이거나
오로지 이슬만 먹고 살 것 같은 아내
혹은 헌헌장부처럼 대단한 포용의 사내 같던 남자가
같이 살면서부터 서로 보여주는 것이라고는,
연애할 때 연출된 것이 정점이었으니 당연히 이제는 내리막의 것들 일 수밖에 없을 것이니
그 식상함은 절경에 대한 식상함보다 더 빨리 올지도 모릅니다.
서로 갈라서면서 지루하게 싸우며 이전투구하는 배경에는 자식의 양육보다도
재산분할이 가장 중요한 쟁점이고 변호사들도 재산분할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득을 얻어
그 성공보수를 챙기려 애쓰고 있습니다.
재산분할약정이 법원을 기속하는 구속력을 갖게 하든가
아니면 혼인관계를 전제로 하여 형성된 것이 아닌 재산-상속이나 기타 증여 등-은
재산분할에서 제외해 주던가 하는 법원의 재산분할의 관행이 개선되어야 합니다.
이미 갈라서기로 하였는데
이것 때문에 이전투구를 지속한다는 것도
사회경제적으로는 마이너스라고 생각합니다.
우리 법원의 재산분할에 관한 관념 중 위 상속이나 증여의 재산에 대해서는 일단은 분할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많은 당사자들이 분노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고, 이는 영미의 해석과는 전혀 반대입니다.
차라리 혼인관계 중에 부부가 형성한 재산은 영.미처럼 특약이 없는 한 철저히 50 : 50 으로 나누고 그 외의 재산에 대해서는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인정하는 것이 훨씬 간명하고 좋을 것 같습니다.
옛 노랫말에 ‘정을 두고 몸만 가니 눈물이 나네’라는 소절이 있지만
정은 가고 몸만 남아 지루한 재산싸움을 해야하는지요?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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